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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려대의료원에 8억 5,000만 원 기부한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 '손가락 고치는 의사'로 살아온
30년 의업과 나눔 인생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1)

고려대 의대 졸업 후 국내 재건성형 분야를 개척한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성형외과 전문의). 황 원장은 꾸준한 기부 활동으로도 찬사를 받고 있다.

국내 수부외과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이 3월 고려대의료원에 의학발전기금 1억 원을 쾌척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수지접합전문병원 이름을 딴 '두손장학기금'을 통해 지금까지 황 원장이 고려대의료원에 기부한 금액은 8억5,000만 원에 이른다. "30년간 성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내가 갖게 된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황 원장을 두손병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경기도 안산시 두손병원을 찾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쌀쌀했던 날씨가 서서히 풀려갈 무렵, 두손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이 참 분주하다"고 하자 황종익 원장(성형외과 전문의)은 "수부 접합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는 우리 병원을 찾아올 수밖에 없으니 늘 그렇다"며 웃었다.

손은 인간 신체에서 특별히 섬세하고 움직임이 많은 부위다. 27개의 뼈, 24개의 힘줄, 32개의 관절과 인대, 혈관, 신경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민한 감각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만큼 한 번 다치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손 부위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황 원장은 고려대 의대 졸업 후 그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1994년 개원한 두손병원은 국내 1세대 수부외과 전문병원으로 꼽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제공하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한국 의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원 이후 두손병원에서 시행한 재접합술만 5,854건. 이 외에도 미세수술 5,821건, 유리피판술 527건 등이 진행됐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환자들이 포함된 수치다.

노동자들 돕고자 들어선 재건성형의 길

두손병원에서 반평생 수술을 집도해온 황 원장은 동료들 사이에서 '괴짜'라고 불린다. 성형외과 전문의이면서 상대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미용성형의 길을 외면하고 고된 재건성형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병원 몸집이 커졌지만, 그가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왜 굳이 가시밭길을 걸으려 하느냐"고 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황 원장의 의업 초창기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짧고 뭉툭한 손가락, 납작하게 눌려 피부를 깊게 파고든 그의 손톱에서 험난했던 전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황 원장은 "3일 동안 40분밖에 못 자고 수술을 하거나, 한 환자의 손가락 여덟 개를 12시간 동안 혼자 재건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가 그럼에도 수부외과 전문의의 길을 택한 배경에는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재건성형 분야 불모지였다. 재접합 수술을 집도할 의료여건이 안 돼 절단술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즈음 전공의 생활을 하던 황 원장이 만난 환자는 대부분 젊은이였다.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2)
국내 손가락 접합 수술 분야 권위자인 황종익 두손병원 원장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내게는 기쁨이자 축복"이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공단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청년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전심전력을 다해 수술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세부 전문분야를 택할 시기에 이르렀을 때 그의 눈 앞에 바로 그 환자들 얼굴이 아른거렸다고 한다. 황 원장은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수지접합수술을 익힌 의사가 몇 명 안 됐다. 그 중 하나인 내가 이들을 외면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당시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하는 사람은 주로 공장 근로자들이었기 때문에 황 원장은 개원 장소로 경기 안산시 단원구를 택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반이 된 반월공단과 가까운 장소였다.

수부외과학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라 무모한 도전이란 평도 있었다. 하지만 우려가 무색하게 개원과 동시에 환자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황 원장은 "병원시설이 완전히 갖춰지기도 전 찾아온 첫 환자는 트럭 운전사였다"고 했다.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이었다고 한다. 운전사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한 황 원장은 아직 간판도 달지 않은 병원에서 손가락 접합 수술을 해줬다. 그렇게 개원 한 달 만에 40개의 손가락을 붙였다. 수부외과 전문 의료기관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절감하는 날들이었다.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쁨이자 축복

이후에도 환자는 계속 늘었다. 세월이 흘러 젊은이들이 프레스나 금형 다루는 일을 기피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리고 사용법을 잘 숙지하지 못하는 중장년층에게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빈번해졌다. 여성과 외국인 환자 비율도 계속 증가했다. 공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외국인과 여성 노동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변화의 세월 동안 황 원장은 계속 메스를 놓지 않았다. 이제는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두손병원은 2005년 수부외과 세부 전문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 유수 병원이 성형외과 전공의를 파견하고 있다. 황 원장은 "후배들이 이 분야로 많이 들어오게 하려면 보험 급여 체계와 의료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는 않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황 원장에 따르면 환자가 끊이지 않지만 수부 접합수술은 오늘날까지도 어렵고 고달픈 분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 마지막 마디인 원위지간관절 이하 부분 접합수술의 경우 조직이 매우 가늘고 섬세해 수술 자체가 까다롭다. 수술 후 처치도 어렵다. 그러나 난도에 비해 수가는 낮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야말로 '험난했던' 의술 인생을 회상하는 황 교수의 표정은 밝았다. 결코 편안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그는 "환자로부터 소박하고 정겨운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수부외과 전문의로서의 초심을 되새기곤 한다"며 자신의 베풂에 대해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의술이나 경제적 지원을 받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 자신이 치료했던 몽골 환자와 몽골에서 만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며 축복"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 EDITOR: 박정연
  • PHOTO: 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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