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권리는 언제 어디에서 왔는가
두산인문극장 <권리>
'Age, Age, Age(나이, 세대, 시대)'를 주제로 진행된 '두산인문극장 2023' 당시 강연 모습.
두산아트센터는 2013년부터 매년 주제를 정해 관련 내용을 공연, 전시,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두산인문극장'을 개최해왔다. 모험, 갈등, 공정 등 매년 다른 주제로 이어진 두산인문극장 관객은 지금까지 11만 명이 넘는다. 올해는 '권리'를 주제로 공연 3편, 전시 1편, 강연 8회가 진행된다.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인권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에게 '결부'되거나 '내재'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연 그럴까. 역사는 권리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존재들이 권리를 갖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남자 시민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노예가 해방되고 여성의 권리가 회복됐다.
그러나 '권리'를 강조하는 인간들의 집단적 욕망은 자연의 궤적을 이탈해 환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부작용도 낳았다. 인간이 '권리'만 주장하다 멸종에 이를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인간은 이제 '동물의 권리', '식물의 권리'와 더불어 인간이 가공한 모든 인공물의 권리까지 고민해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됐다.
인간이 '비인간'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들과 권리를 나눠야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두산인문극장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는 작품과 강연들을 만날 수 있다. 문의 02-708-5001
공연
연극 '더 라스트 리턴' 4월 30일 ~ 5월 18일(화·수·목·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작 소냐 켈리(신혜빈 번역), 연출 윤혜숙
인생의 진리란 무엇일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그 답을 품고 있다고 찬사를 받는 연극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를 보러 간다. 마침 마지막 공연일이고, 표는 매진 상태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 속에 대학교수, 회사원,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가진 채 대기 줄에 앉아 마지막 취소표를 기다린다. 과연 마지막 취소표를 가져갈 사람은 누구일까?
이 작품을 쓴 아일랜드 극작가 소냐 켈리는 2019년 새해 베를린에서 '리처드 3세' 공연을 보러갔다가 표가 매진돼 취소표를 기다린 경험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본을 집필해 2022년 골웨이 아트 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이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더블린 국제 연극제 등에 발표해 다수의 연극상을 휩쓸었다.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편' 5월 28일 ~ 6월 15일(화·수·목·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작·연출 이연주
예술가는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며 투쟁한다. 그렇다면 장애인 예술가는 어떨까.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권리도 함께 존중한다는 의미다. 예술가로서의 존재와 권리가 부정당함으로써 자기 존중을 상실하게 된 장애인 예술가의 인정투쟁을 통해 존재를 인정받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방식의 관계맺기가 가능한지 조명하는 작품.
2019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작이다. 연극은 빈 무대에서 한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사회적 투쟁과 파생되는 갈등을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바라보고 인간과 사회를 성찰한다.
연극 '크리스천스' 6월 25일 ~ 7월 13일(화·수·목·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작 루카스 네이스(번역/드라마터그 정지수), 연출 민새롬
미국에서 작은 개척교회로 시작해 대형교회를 일군 담임 목사 폴. 그동안 교회를 세우느라 지게 된 빚을 10년 만에 드디어 청산한 날, '지옥이 없다'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해 설교한다.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고 지옥 아닌 천국에 간다고 굳건히 믿는 부목사와 일부 신도들은 여기에 반발하며 교회를 떠난다.
종교적 믿음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는 '크리스천스'는 한 인간이 마주한 도그마(교리 또는 독단)를 통해 '믿음에 대한 권리',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를 보여준다. 현대 사회의 믿음과 공동체, 그 사이 균열을 일으키는 권리 간 충돌과 딜레마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2005년 제27회 전국대학연극제 연출상,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전시
우리는 개처럼 밤의 깊은 어둠을 파헤칠 수 없다 5월 15일 ~ 6월 22일 오전 11시~오후 7시(일·월요일 휴관) 참여작가 고사리, 권동현×권세정, 박화영, 엘리 허경란
인간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믿음은 지구 환경과 다른 생물종에 대한 착취를 불러왔다. 조각, 영상, 사진, 설치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이에 대한 반성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비인간 존재의 자리를 비추고, 손에 쥔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제목 '우리는 개처럼 밤의 깊은 어둠을 파헤칠 수 없다'는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개를 위한 노래(Dog Songs)'에서 가져온 것으로,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포착하는 눈을 가진 개의 고유한 특성을 환기하며, 우리와 다르게 움직이고 감각하는 동물을 또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 동물, 식물의 삶에 주목하고, 인간-비인간 관계의 얽힘을 드러내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은 오히려 '나눔'과 '공생'임을 확인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기획전 '우리는 개처럼 밤의 깊은 어둠을 파헤칠 수 없다'에 참여한 박화영 작가의 영상 작품 '치자와 단도'.
강연
인권, 다양성과 배려를 넘어서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 6월 3일 오후 7시30분
보편적 인권 개념은 추구하는 것이지, 현실이 아니다. 인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합하는 정치적 과제다.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고 인간의 권리는 무엇인가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이번 강연에서는 인권의 적용을 둘러싸고 배제와 포함의 원리를 살펴본다. 특히 인권 개념과 관련하여 오해하기 쉬운 '다양성', '배려', '관용'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왜곡하는지 살펴본다.
동물의 권리와 동물법 박주연 변호사,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이사 / 6월 10일 오후 7시 30분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동물원에 동물을 가두어두는 건 동물 학대일까 아니면 인간의 즐길 권리에 따라 허용되는 것일까? 왜 개를 먹는 건 금지해야 하는 걸까? 이제 '동물권'은 흔히 들리는 용어가 됐지만, 그 뒤에는 다소 복잡한 철학적, 법적 문제들이 숨어 있다. 동물권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에서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한민국에서 동물권 논의와 동물법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공생하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살펴본다.
노예,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투쟁 권윤경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교수 / 6월 17일 오후 7시 30분
18세기 후반 유럽, 계몽주의와 혁명의 시대에 '권리'의 담론은 자유를 정의하고 정치체를 재구성하는 원리로 부상했다. 그러나 같은 때 유럽이 식민화한 아메리카에서는 아프리카 노예제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철학자들이 카페에서 자연권을 논하며 마시던 커피와 설탕은 인간으로서의 권리 일체를 부정당한 노예들의 피땀으로 재배됐다. 노예가 된 사람들이 혁명의 시대에 다양한 저항을 통해 어떻게 급진적으로 인권을 재정의했는지, 그들의 투쟁이 인권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로봇의 권리, 인간의 자리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 6월 24일 오후 7시 30분
로봇에게 권리가 있다거나 로봇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 권리의 근거는 로봇의 생김새일까, 지능일까, 영혼일까, 운동능력일까, 생산성일까, 자율성일까? 로봇의 권리를 논할 때 우리는 낯선 존재를 상상하고 규정하고 맞이하고 응시하고 길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드러낸다. 권리의 위계에서 로봇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자리도 함께 조정한다.
- EDITOR: 황승경
- 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