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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WALK

서울 도심에서 즐기는 유유자적 트레킹 한양도성 순성길

안양천 징검다리

신록이 우거진 낙산공원. 한양도성 순성길 낙산구간 가까이에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뽕나무밭(桑田)이 푸른 바다(碧海)가 된다'는 뜻으로 지리적 환경이 크게 변한 것을 의미한다. 재개발, 재건축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상전벽해가 일상이다. 현실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어린 시절 노닐던 고향 동네를 찾았다가 완전히 달라진 풍경에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우리에게 수백 년 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양도성 순성길은 보물 같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 명, 면적 605.2㎢에 이르는 세계적 메가 시티다. 많은 이가 14세기 말 조선 건국부터 서울의 역사가 시작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신석기 시대부터다.

서울은 기원전 18년 건설된 백제 위례성을 기준으로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000년 넘는 시간을 지나온 역사 도시다. 백제(BC 18~AD 475), 고구려(475~551), 신라(551~992)가 각각 터를 잡았던 곳이라 서울에서 고대 삼국 문화유적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삼국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고려는 개성을 수도로 정하고, 지금의 인왕산 아래에도 궁궐을 지었다. 당시 서울 이름은 '남경(남쪽 도읍)'으로, 고려 4대 도시 중 하나였다.

고려 말 "도읍 개성의 지덕이 쇠하였으니 남경으로 천도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지만, 잦은 전쟁과 기근으로 실천 동력이 잘 생기지 않았다. 1390년 고려 공양왕이 남경을 새로운 도읍으로 삼았다가 개성 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5개월 만에 환도한 일도 있다.

불과 2년 후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1394년 한양을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확정한다. 그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 남주작(남산), 북현무(북악산)의 사신(四神)이 어우러지는 풍수적 명당 도시를 계획했다. 이때부터 서울은 명실상부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

낙산구간 골목길
낙산구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골목길. 낙산구간은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다정한 산책로다.
한양도성 순성길
돌담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한양도성 순성길 풍경.

민초들의 땀과 눈물 서린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수도 중심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경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이다. 서울 안쪽 동서남북에 각각 자리한 낙산·인왕산·남산·북악산 등 내사산(內四山)을 따라 평균 높이 5~8m로 축조했는데, 총 길이가 18.6km에 이른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양도성은 아무나 못 들어가는 수도 서울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지금은 현존하는 세계 모든 도성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514년, 1396~1910) 제 구실을 한 성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긴 역사 동안 외부 침입과 자연재해 등을 겪다 보니 여러 차례 개축이 진행돼 성벽을 자세히 보면 시기별로 다른 돌 크기와 모양, 축성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양도성(1)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도성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외부 침입을 막고자 건설한 것이지만,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양도성(2)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의 기능을 수행했다.

공사를 시작한 1396년에는 산지는 돌, 평지는 황토로 벽을 만들어 세웠다. 각각 석성, 토성이다. 그러나 돌로 성을 쌓는 과정에서 자연석 크기와 모양을 그대로 둔 채 모서리만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염려가 있고 자연재해에 취약한 단점이 드러났다. 26년 후인 1422년, 세종은 평지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자연석을 네모난 모양으로 다듬어 쌓도록 했다.

숙종 때인 1704년 이후엔 돌을 가로세로 40~45cm 크기로 만들어 각 단마다 균일한 높이를 유지함으로써 성이 훨씬 견고해졌다. 숙종의 증손자인 순조는 1800년부터 가로세로를 동일하게 60cm정도로 맞춘 정사각형 돌로 성벽을 개축했다.

한양도성 출입문
한양도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출입문.
한양도성 돌담
한양도성 돌담 위에 놓인 돌들. 필자도 살포시 돌 하나를 더하며 마음 속 소원을 빌었다.
한규만 교수(2)
한양도성을 구성하는 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서로다른 모양과 곳곳에 새겨진 글씨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다.

낙산 능선을 따라 건축된 낙산 순성길 성곽에서는 각 시대별 성석 변화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 만든 성곽답게 한양도성에는 시기별 축성 기록을 새긴 돌도 남아 있다. 이를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한다. 한양도성 축성 당시에는 천자문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했고, 세종 때는 해당 구간 축성을 담당한 지방 이름을 새겼다.

이후 성벽이 무너지면 돌에 새겨진 지방에 연락해 다시 쌓을 인력을 요청했다고 한다. 숙종 때부터는 아예 축성 관리책임자와 기술자 이름을 새겼다. 한양도성 전체 구간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여러 유형의 각자성석 280여 개가 남아 있다. 그 안에는 조선의 흥망성쇠를 온 몸으로 겪은 민초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서려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낙산구간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역사를 호흡할 수 있는 순성길은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백악(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등 4구간에 흥인지문·숭례문 구간을 더해 크게 6구간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낙산구간(혜화문-낙산-흥인지문)은 최고 고도가 126m로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도 2.1km로 짧아 소풍하듯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오른쪽 길 건너에 혜화문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 나무계단을 오르면 바로 잘 조성된 낙산구간이 펼쳐진다.

낙산구간 진입로
한양도성 순성길 낙산구간 진입로. 서울지하철 4호선 4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혜화문이 보인다. 그 왼쪽나무 계단을 오르면 바로 잘 조성된 낙산구간이 펼쳐진다.
혜화문
낙산구간 출발 지점에 있는 혜화문.

다른 구간 순성길이 험난한 산길이라면 여기는 우리네 이웃과 오순도순 부대끼는 다정한 산책로다. 길은 가톨릭대학교 뒤편 장수마을 쪽으로 이어지고 정상에 오르면 밀집한 주택과 벽화가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드러누운 용처럼 쭉 뻗은 낙산구간을 걸으면 발아래로 동서남북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 되면 성곽을 따라 조명이 켜져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한다.

서울 전경
한양도성 순성길 낙산구간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

만약 걷다 지치면 중간에 낙산공원으로 내려와 마로니에공원, 아르코미술관 등을 둘러보며 힐링한 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아르코미술관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운영한다.

올봄 한 시간 남짓 혼자 걸으며 나를 돌아보고 일상에 활력을 더하고 싶다면 한양도성 낙산구간이 안성맞춤이다. 500년 전, 몇 날 며칠 천리 길을 걸어 피곤한 몸으로 당도해 한양도성의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던 민초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역사와 함께 인간사도 돌고 돈다.

새로 단장한 서울둘레길 2.0

서울은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빌딩과 고즈넉한 고궁이 어우러져 있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역사 첨단 복합도시다. 서울 도심은 온종일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잘 조성돼 있다. 특히 서울을 한 바퀴 크게 돌 수 있게 꾸며진 약 157km의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 등을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쉽고 대부분 경사가 심하지 않은 흙길이라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최근 2014년 조성해 만 10년이 된 서울둘레길을 전면 개편하면서 '서울둘레길 2.0'을 선언했다. 당초 총 8개 구간으로 코스 당 평균 길이가 20㎞에 달해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던 코스를 21개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기존에 약 8시간 걸리던 완주 시간이 평균 3시간으로 단축됐고, 누구나 하루에 한 코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코스가 변경되는 기점 21곳에 지역의 특성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하고 둘레길 방향 안내판도 눈에 띄게 바꾸는 등, 둘레길 환경도 쾌적하게 새단장했다. 5월부터는 매월 둘레길을 즐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하니 운동 삼아 가볍게 걸어볼 만하다.

  • EDITOR: 황승경
  • PHOTO: 황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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