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오픈 이노베이션'
“좋은 아이디어 공유·발전 가능”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만큼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올해 초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헬스케어 미래포럼'을 열고 이 분야 성장을 견인할 핵심 인재상으로 '의사과학자'를 꼽았다. 의학지식과 과학기술을 접목해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의사를 말한다. 고려대구로병원에도 안팎에서 주목하는 의사과학자가 있다. 그는 환자 진료뿐 아니라 의료 현장의 수요를 파악해 신(新)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화해 재적용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고려대구로병원이 2016년 6월 자회사로 설립한 ㈜엠엔비메디텍의 대표이사인 이 병원 산부인과 조금준 교수다. 그에게 어떤 신기술을 연구개발하는지, 의사과학자 양성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들어봤다.
대학병원 교수인데 어떻게 병원 자회사의 대표이사가 됐나?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이런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이건 이렇게 바꾸면 더 좋겠다'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긴다. 마침 2016년 고려대의료원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창업 공모전을 열었다. 평소 생각만 하던 것을 구현시킬 좋은 기회라 생각해 지원했는데 대상을 받았다. 이후 이 제품을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할 전문적인 회사를 만들게 됐다.
조산을 방지하는 자궁 경부 밴드를 만들었다던데
태아를 단단히 받쳐줘야 할 자궁 경부가 임신 중 힘없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자궁경부무력증'이라 하는데, 지금은 자궁 경부 주변을 실로 묶는 수술을 한다. 마취를 해야 하고, 염증과 출혈이 생기거나 양수가 터질 수 있다. 여러 합병증의 위험이 있다. 반면 제가 고안한 실리콘 밴드는 수술실이 아닌, 산부인과 외래에서 간단히 자궁 경부를 묶는다. 자궁경부암 검사하듯 돌기가 있는 실리콘 밴드를 자궁 경부 혈관에 끼우고 돌려서 잡아당기면 된다. 간단하고 안전해 의료 수준이 떨어지는 후진국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산모 불편 해소 위해 만든 '쿨링 팬티'
개발 중인 조기양막파수 치료 약물은 어떤 것인가?
태아는 양막 안 양수에서 성장하는데, 양막이 일찍 파수되면 태아는 폐 성숙에 문제가 생겨 위험해진다. 임신을 유지하더라도 염증이 생길 수 있어 어린 주수에는 임신을 종결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게 홍합추출물 성분을 이용해 양막에 생긴 구멍들을 막는 방법이다. 홍합에는 물속에서 껍데기가 벌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성분이 있다. 양수가 흐르는 환경에서 잘 붙어 있도록 한 아이디어다. 홍합추출물 성분을 자궁 경부 쪽으로 주입하면 파열된 양막을 막고, 양막 세포들이 재생되면서 구멍이 막히도록 돕는다. 아직 연구 중인데, 성공한다면 조기양막파수에 대해 획기적인 치료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산 직후 산모가 입을 1회용 팬티도 만들었던데.
거창한 것만 연구개발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산모들은 작은 것에서 불편을 느낀다. 출산 후 대부분 자기 팬티를 입는데, 피가 묻는다. 또 회음부 절개로 아프니 병원에선 수술용 장갑에 얼음을 넣어준다. 그래서 생각한 게 출산 후 산모가 입는 1회용 쿨링 팬티다. 차가워지는 쿨링 패드가 덧대어져 얼음주머니를 댈 필요가 없고, 1회용이니 피 묻은 팬티는 버리면 된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다.
이 밖에 또 연구개발 중인 게 있나?
출산 후 자궁 수축이 안 되면 산모에게 출혈이 많다. 국내외에서 출산 후 출혈을 막아주는 풍선이 개발됐는데, 써보니 불편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이 장치는 자궁 안에 풍선을 넣고 물을 넣으면 자궁 안이 압박되면서 출혈을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긴박한 상황에서 주사기로 직접 물을 채워 넣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물을 넣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래서 모터를 연결해 자동으로 물을 채우는 장치를 고안했다. 물 풍선이 자궁을 너무 압박하면 안 되니 센서를 달아서 일정한 압력으로 조절해 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산모의 출혈을 효과적으로 지혈시키는 장치다.
"암처럼 돈 되는 연구에만 치우쳐"
연구개발을 계속 하는 이유는?
재미도 있지만, 의료 현장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궁 경부 무력증으로 아기를 잃은 상황을 보고 의사로서 좌절하느니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의사들이 많을 텐데 서로 공유하고 발전시키면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혼자 다 공부해서 만들기는 어렵지만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을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의사과학자로서 어려운 점은?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응급 환자를 수술하다 보니 연구개발할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아이디어를 산업화하려면 발품을 팔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공대 교수, 공대생, 창업자, 시장 자영업자 등을 수없이 만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또 국책 연구 과제를 냈을 때 산부인과와 관련된 내용은 경쟁력에서 많이 밀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과제들이 굉장히 혁신적인 4차 산업혁명 분야라든지, 암처럼 크게 돈이 되는 연구에만 치우쳐 안타까웠다. 실제 임상에 필요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과제들이 있으면 좋겠다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가 설치됐는데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센터 선정 이후 의료진 스스로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센터라는 구심점을 통해 새로운 목표도 생기고, 더 최선을 다하고, 부족한 것을 정비하는 기회가 됐다. 또 다른 진료과에서 산부인과에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도 명확해진 것 같다. 덕분에 여러 합병증을 가진 고위험 산모들이 왔을 때 한 번에 종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믿음도 더 생겼다. 치료 순응도가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최근 산부인과 분위기가 많이 침체돼 있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지쳐 있는 의사들이 많다. 이번 정부 지원이 이런 의료 현장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고령산모를 위한 저출산 극복을 실천 중인데.
나 역시 아이를 둔 아빠다. 주치의로 직접 아이를 받기도 하고, 막내는 미국 연수 중일 때라 보호자로서 출산을 지켜봤다. 덕분에 산모와 가족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잘 알게 됐다. 또한 아내의 경험을 토대로 35세 이상 고령 산모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지 말라고 더 권하게 됐다. 건강관리만 잘한다면 나이가 많아도 임신과 출산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 꾸준히 운동해 체중이 지나치게 늘지 않도록 조절한다. 임신을 계획했을 때부터 술과 담배를 끊고, 엽산을 먹고, 기저질환이 있다면 치료해야 한다. 고령 산모가 아이를 잘 낳게 돕는 것도 저출산 극복에 매우 중요하다.
- EDITOR: 이주연
- PHOTO: 김도균,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