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고대도시 이스파르타 & 아피온 4000년 역사 간직한 호수 그리고 꽃 천지
아나톨리아 고원의 해발 917m에 위치한 에이르디르 호수.
유럽과 아시아,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 바로 터키다.
4000여 년의 긴 역사가 곳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특별한 땅이다.
5월이면 꽃 천지로 변한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양귀비가 봄바람 타고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두루 거느린다. 수도 이스탄불 앞바다(마르마라해)의 보스포러스해협이 대륙을 둘로 나눈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이스탄불 시내로 출근하는 이라면 그는 매일 두 대륙을 섭렵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에게해로 불쑥 튀어나온 터키의 땅 아나톨리아.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의 일부다. 이곳에 일생에 한 번쯤은 꼭 가볼 만한 고대도시 두 곳이 있다. 바로 이스파르타(Isparta)와 아피온(Afyon)이다.
장미와 호반의 도시'이스파르타'
오스만투르크제국 군복 차림의 이스파르타 시민악대가 시청 앞에서 축제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
터키 남서부 해발 1035m 고원에 이스파르타주의 주도이자 '장미의 도시' 이스파르타가 있다. 이곳에선 매년 5월이면 화려한 장미축제가 펼쳐진다. 오스만투르크제국 시절 복장을 한 군악대의 터키 민속음악 연주에 맞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장미 아가씨들이 긴 퍼레이드를 벌이며 장미꽃을 뿌려댄다.
장미는 전 세계인이 가장 애호하는 꽃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가 1900년 크레타섬에서 발굴한 크노소스 궁전(기원전 2000~기원전 1700년 건축) 벽화에도 장미가 그려져 있고,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호메로스 서사시의 '일리아드'에도 장미가 등장한다. 로마 군의 개선 행진에선 발코니에서 뿌려지는 장미가 절대 빠질 수 없었고, 장례에도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장미는 필수였다.
장미 종류는 무려 1350종. 색깔도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장미라고 모두 같지는 않다. 장미유(장미꽃 기름)를 뽑아낼 수 있는 장미는 연분홍빛의 '다마스쿠스 장미' 단 한 종뿐이다. 장미 꽃잎을 따서 밀폐된 솥에 물과 함께 넣고 가열하면 장미유가 추출되고, 남은 물이 장미수다. 장미유는 고가의 화장품 원료로, 장미수는 요리할 때나 방향제와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인다. 이 장미의 주 생산지가 바로 이스파르타다.
이스파르타에선 모든 게 장미와 관련이 있다. 터키어로 장미는 '귤'인데, 태어난 시각에 따라 아이들을 세 부류로 나뉜다. 오전 5~10시 사이에 태어나면 '귤레덴(장미꽃 따는 아이)', 오후 태생은 '귤체렌(장미꽃 나르는 아이)', 밤에 태어나면 '귤라이(장미꽃과 달)'로 부른다. 터키의 작별인사도 '귤레 귤레'다.
청량한 5월의 아침 '장미의 향연'
이스파르타에서 50km가량 떨어진 부르두르 호반의 장미 재배 마을 아디르칠리(해발 950m)에선 장미꽃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 대신 좀 부지런해야 한다. 장미꽃잎 수확은 주로 해가 뜨기 전에 이뤄진다.
호수를 배경으로 언덕 경사면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장미꽃밭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맑고 청량한 5월의 아침, 장미꽃 가득한 꽃밭 한가운데 파묻혀보는 것도 색다른,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스파르타 주변에는 멋진 호수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에이르디르(Egirdir)호수'다. 수면 면적 482㎢로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이 호수는 다양한 채도의 파란 빛깔과 수시로 변하는 구름 형태에 따라 조사되는 빛의 양을 반영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호수에 인접한 호반 도시 에이르디르의 역사는 3000여 년 히타이트(청동기~전기 철기)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이곳은 에페수스(지중해안)와 바빌론(메소포타미아 내륙)을 잇는 교역로상의 카라반(대상) 도시다. 당시엔 이런 휴게소 개념의 도시를 90km마다 두었다고 한다.
시내엔 13세기 셀주크투르크제국 당시 건축한 카라반 숙소가 아직 남아 있다. 한때 신학교로 개조돼 사용됐고 현재는 상가로 변했다. 당시 창고로 쓰이던 건물은 현재 모스크로 변했다. 호수엔 두 개의 섬이 있고 한 섬은 육지로 변했는데 그 끝에는 멋진 호반 레스토랑(이름 멜로디)이 있어 호수 경관을 식도락과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양귀비와 온천 휴양도시'아피온카라히사르'
해발 1055m 고원의 초원을 뒤덮은 양귀비 꽃밭
해발 1055m의 고원에 자리잡은 도시 '아피온카라히사르(Afyonkarahisar)' 역시 아피온카라히사르주의 주도다. 흔히 아피온으로 불린다. 이곳에선 도시의 복닥거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적한 농촌의 중심가 정도라고나 할까. 도시 이름 아피온카라히사르는 '아피온'과 '카라히사르'의 조합으로 터키어 '카라'는 검은색, '히사르'는 요새를 뜻한다. 다시 말해 '검은 요새를 지닌 아피온'이라는 의미다.
그 요새는 도심 한가운데, 거기서도 바늘처럼 하늘로 솟구친 표고 226m 돌산 정상에 있다. 여길 오르려면 무려 578계단을 디뎌야 한다. 요새는 지금도 건재하다. 그런데 카라히사르보다 아피온이란 지명이 더 유명하다. '아편(阿片)'이란 한자어가 바로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편은 통증을 잊게 하는 모르핀의 원료로 아피온이 전 세계 유통량의 65%를 제공한다. 그 원료인 양귀비 재배를 통해서다. 한때 아피온은 마약 공급처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 지하 온천수를 활용한 스파타운으로 확 바뀐 것이다. 아피온 도심과 외곽에 4, 5성급 고급 온천 리조트와 호텔이 10여 개 성업 중일 정도다. 터키의 목욕 문화는 세계적이다.
이건 서로마제국 시기에 들어온 로마의 유물이다. 지금도 건재한데 아피온의 온천 휴양시설은 그런 터키의 전통 목욕시설 하맘(Hamam)과 더불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물론 양귀비 재배도 여전하다. 주변 초원에선 양귀비밭이 지평선을 이룰 만큼 널찍하게 펼쳐지고 5월 개화기면 요염한 양귀비의 하얀 꽃이 푸른 초원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누군가 그랬다. 양귀비밭에 살아봤으면. 그게 소원이라면 아피온으로 가라.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4000년 역사
아피온은 도시 전체가 고대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2000년기 히타이트 시대를 시작으로 브리기아왕국, 리디아왕국,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 지배기를 지나 기원후 들어선 서로마제국과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그리고 무스타파 케말이 이끈 터키 민족운동을 통해 세워진 지금의 터키공화국까지 무려 4000여 년의 인류 역사가 이 도시에 오롯이 녹아 있다.
시내 골목길에 들어서면 오스만투르크(13~20세기) 시대에 지어진 주택이 지금도 건재하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사는 주민들도 21세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함과 여유 속에 살아가는 듯하다. 이 때문에 아피온의 시간은 다른 공간과 다르게 느껴진다. 4000년이라는 긴 세월처럼 더 느리고, 더 느긋하고, 더 게으르게 흐르는 것 같다.
아피온은 아타투르크(터키민족운동을 이끈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자 터키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가 1차 세계대전 후 패망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을 분할하려는 열강의 탐욕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민족운동을 선언한 터키공화국의 상징적인 장소다. 주지사 광장엔 그 운동을 기념하는 나신의 두 남자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이런 문장이 씌어 있다. '우린 이렇게 빈 몸으로 싸우지만 반드시 승리한다'.
돌산의 저 요새가 '미다스의 손', '고르기우스 매듭'의 부르기아왕국 유산이자 아피온의 상징이며 정체성인 '카라히사르(검은 요새)'다.
Travel Information
1이스파르타 : 인천~이스탄불~쉴레이만 데미렐 국제공항
매년 5월 초 5일간 장미축제가 열린다. 맛집으로는 169년 역사의 케밥 전문 식당 '케밥치카디르'를 추천한다. 터키의 케밥은 '꼬치구이'의 통칭으로 쾨프테(떡갈비 스타일), 타북시시(치키꼬치) 등 다양한 케밥을 맛볼 수 있다. 주민들이 기증한 전통 카펫 5000여 장이 전시돼 있는 '카펫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꼭대기 층에 오르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2아피온 : 인천~이스탄불~자페르 국제공항
로마제국의 화려한 목욕 문화와 이슬람 종교의 정결한 의식이 결합해 탄생한 터키식 목욕장이 '하맘(Hamam)'이다. 아피온은 여기에 서구식 온천 스파를 접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 휴양 리조트로 발전시켰다. 이곳 온천 휴양 리조트는 시설 수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1박 2식 요금이 기본. NG Hotels(퀴타햐 포슬란 직영 리조트), Ikbal Thermal Hotel & Spa, KOREL Thermal Resort Clinic & Spa, Budan Thermal & Spa Hotel-Convention Center 등이 유명하다.
- WRITER·PHOTO: 조성하 여행작가